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틴아메리카 근현대사 (문단 편집) === 먼로 독트린과 미서전쟁 ===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럽]]이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등등으로 정신이 쏙 나가 있는 상황이라 바다 건너 라틴아메리카까지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사분오열이 용납이 됐지만... [[미국|진짜 적은 따로 있었다.]] 유럽에 [[빈 체제]]하에서 나폴레옹 전쟁의 피해를 추스리고 시민혁명 확산을 방지하느라 집안단속에 급급하여 라틴아메리카는 [[아웃 오브 안중]]일 동안 19세기 초 신생독립국에 불과했던 [[미국]]은 미리 유럽의 간섭을 배제하고 라틴아메리카를 장차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둘 사전 포석으로 ~~침 발라놓기~~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유라시아 대륙에 미국은 관심없다. 그러니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도 관심 꺼라.''' '''이렇게 시작된 먼로 독트린은 21세기인 현재도 사실상 유효하다.''' 누에바에스파냐 시절 멕시코는 비옥한 중부 고원지대에 인구가 몰려있었고, 북부의 건조지대는 점과 선 형태의 느슨한 지배를 유지되고 있었다. 같은 시대 미국 동부의 펜실베이니아나 뉴욕, 보스턴 등의 항구로 입항한 유럽계 이민자들은 새로 개척할 농지를 찾아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텍사스에 상당한 수의 독일계와 영국계, 폴란드계 이민자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을 거쳐 자국에 들어온 이들 [[미국계 멕시코인]]들에게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개신교 대신 가톨릭을 믿을 것을 요구하였으나, 텍사스의 독일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실세(19세기 초 텍사스 인구의 90%가 미국을 거쳐온 이주민들이었다.)라는 점을 파악하고 말을 듣지 않았다. 당시 멕시코 대통령 [[산타 안나]]는 텍사스 이주민 세력에 무장해제 이후 텍사스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텍사스 미국인들은 이를 무시하였고, 이후 미국계 이주민들의 반란을 진압하러 출동한 산타 안나가 졸전 끝에 산 하신토 전투에서 텍사스 반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자세한 전개는 [[미묵전쟁]] 참고. 멕시코 측에서는 미국이 멕시코 중부로 내려오면 아이티 혁명 이후 아이티를 재차 침공했던 프랑스군마냥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애초에 배멀미를 앓으며 섬나라에 온 아이티 침공 프랑스군과 별 저항을 받지 않고 멕시코 북부 영토를 뚫고 들어온 그것도 보급체계가 잘 갖추어진 미군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전쟁 패배로 영토의 '''55%'''를 뜯기는 엄청난 피해를 입은 멕시코는 이후 다시 미국에 대항하지 못했고, 현재도 미국의 충실한 앞마당 멀티로서 기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으니(...).[* 현재 텍사스나 콜로라도, 캘리포니아, 오리건, 애리조나, 유타, 아이다 호, 네바다, 뉴멕시코 등을 당시 미국이 접수하게 됐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영토를 독일이 멕시코에게 참전요구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치머만 전보 사건]]을 참고하라.] 1860년대 이후 [[남북전쟁]]의 전후처리와 북미 본토개척 과정에서 주춤했던 미국의 대외 팽창은 19세기를 마감하기 직전 본격적으로 재개된다. 상대는 그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식민지]]를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던 [[스페인]].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미국은 [[쿠바]]와 [[푸에르토 리코]]를 획득한다.[* 이 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에서는 [[필리핀]]과 [[괌]] 득템.] ~~이걸로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짐싸들고 [[퇴갤]]~~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를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19세기 초반 [[미멕전쟁]]으로 멕시코를 간단히 찍어누르고 19세기 후반 [[미서전쟁]]으로 카리브 해까지 안마당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미국은 [[중미]] 지역 지배력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아직 20세기 초반 당시는 영국 자본이 남미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에 영향력이 강하던 시점이어서, 미국이 섣불리 [[남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눈치를 봐야하는 시점이었다. 물론 2차대전 이후에 미국이 영국을 대체하는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면서 이런 판도가 깨지지만 카우디요들이 영국 자본을 거부하던 중미에서는 일찍이 영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